
끔찍했던 유대인 수용소의 기억을 되짚으며 자신의 글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도 치유하려 했던 빅터 프랭클의 정성과 노력으로부터 느낀 감동을 독자 님들께 알리고자 이 감상문을 쓴다.
읽게 된 동기
나는 연골판에 이상이 생겨 군 병원에 오래 머무르며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조던 피터슨 교수님의 영상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이상적이고 나에게 직접 다가오지 않는 두루뭉술한 강의가 아닌 보수적 접근을 통한 현실적인 조언 덕분이었다. 나는 ‘남자에게 인생의 의미란 무엇인가.’라는 조던 피터슨의 영상으로부터 삶의 가치관에 큰 도움을 받았다. 이는 남자가 인생으로부터 가져야 할 책임감으로 군 생활 동안 분대장으로서 분대원들을 대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무엇보다 그분으로부터 느껴지는 진솔함과 깊은 열정에 감복하여 조던 피터슨 교수님을 존경하게 되었다. 그런 교수님이 추천한 책이 바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였다. 그분은 이 책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훌륭한 책입니다. 매우 심오하고요. 그리고 의미 깊으며, 진지하고 희망을 말하는 책입니다. 비록 매우 매우 어두운 책이지만요."
동시에 교수님은 이 책이 딱히 길지 않고, 찾기 쉬우며,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다고 하셨다. 영어 제목을 직역하면 인간의 의미 탐구로, 감상문을 쓰며 다시 생각하기를 저자가 제목을 정말 직관적으로 잘 지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조던 피터슨 교수님이 인생의 의미를 알게 해 준다고 추천한 책이라서 이 책을 읽어보았다. 조던 피터슨 교수님은 하버드 심리학 교수로 보수적 접근을 통한 인생의 의미 강의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책의 영어 제목은 Man's searching for meaning이다.
줄거리
빅터 프랭클 교수는 나치 수용소에서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에 수감되며 더없는 고통을 느낀다. 그는 다른 수감자들처럼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다가 수감되기 전 인간 정신을 연구하던 정신과 의사로서 의미를 찾고 사명감을 얻는다. 그리고 끝내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수필을 작성한다. 이 과정에서 프랭클은 수용소에서의 삶으로부터 '행위, 경험, 각오'라는 세 가지 방법에 따라 삶의 의미에 도달하는 로고 세러피라는 개념을 창시하기에 이른다. 뒤이어 개정판에서 그는 '비극 속에서의 낙관'이라는 희망적인 내용으로 이 이야기를 결론짓는다.
프랭클 교수는 아우슈비츠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인생의 의미를 중요시하는 로고 세러피를 창시한다. 로고 세러피는 실존적 공허가 가득한 20세기 사람들에게 효과적인 치료방법이었다. 기존 심리학에서 의사가 환자의 삶을 그려내는 화가의 역할을 했다면 로고 세러피에서 의사는 안과의사의 역할을 했다. 로고 세러피는 환자가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나는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이 부분이 로고 세러피를 한마디로 요약하는 행동강령이라고 생각한다.
저자 소개
저자인 빅터 프랭클 박사는 190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고,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와 철학박사를 받았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아들러의 개인 심리학에 이은 정신 요법 제3학파라 불리는 로고 세러피 학파를 창시했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죽음 속에서 자아를 성찰하고, 인간 존엄성의 위대함을 몸소 체험하였다.
로고 세러피란?
프랭클 교수는 환자가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창시한 로고 세러피는 실존적 공허가 가득한 20세기 사람들에게 뛰어난 치료 방법이었다. 로고 세러피는 의미를 뜻하는 logos와 terapy가 합쳐진 단어로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물론, 그 의미를 찾아 나가는 인간 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이다. 당시의 심리학에서 의사가 환자의 삶을 그리는 화가와 같았다면, 로고 세러피에서 의사는 안과 의사 역할을 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어떤 의미를 찾으려고 할 때, 미래에 초점을 맞출 때,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알고 있을 때 삶의 원동력이 생긴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앞으로 삶을 살아갈 때의 나침반인 것이다.
비극 속에서의 낙관이란?
비극 속에서의 낙관이란 로고 세러피에서 말하는 세 개의 비극적인 요소에도 인간은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계속 낙관적일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세 개의 비극적인 요소는 인간의 삶을 제한하는 '고통, 죄, 죽음'을 의미한다.
흥미로웠던 점
나는 인간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처럼 극한의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는 책 전반에서 프랭클이 말했던 철조망 공포증이 나를 휘감는 것을 느꼈다. 그중 나는 특히 세 가지가 기억에 크게 남는다.
1. 모든 인격이 허물어지며 '체념 상태'에 빠지는 것.
나는 군대에서 이것이 참임을 느꼈다. 내 선임들 중에서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려 하고 침낭에만 누워있으려는 선임들이 있었다.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가 없어지고, 순간적인 쾌락의 추구가 뒤를 있는 것이었다. 책에는 이보다 상황이 심각해지면 어떻게 되는지도 상세히 설명한다. 결국 기본적인 욕구조차 못하게 되며 삶의 의지 자체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수용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행동이 그러했다. '한 사람이 누워서 꼼짝 않고 담배를 피우면 그 사람은 역시 2~3일 후에 죽었다.'와 같이 삶으로부터 의미를 잃으면 인생에서도 끔찍한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2. 그 과정에서도 예배를 드리는 등 초월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넝마 같은 옷을 입은 채 멀리 떨어진 작업장에서 피곤하고 굶주린 얼어붙은 몸을 이끌고 막사로 돌아가는 바로 그 트럭 안에서 즉석 예배와 기도회가 이루어지곤 했다"이 부분을 읽으며 나의 군대 생활이 떠올랐다. 군인의 피곤한 일과와 밤을 새우는 근무 속에서 휴일은 금보다 귀한 시간이다. 그런데 이 시간을 교회에서 보내는 병사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나는 군종병으로 토요일, 일요일을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는데 나 같은 군종병 형제들이 많다. 이들은 왜 휴일을 포기하면서까지 아무런 대가 없이 봉사를 하는 것일까? 이것이 바로 신앙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상황은 신앙을 더욱 강하게 한다.
3. 그렇게 수용소에서도 선하게 살아가려는 사람과 카포처럼 악한 사람들로 나눠진다는 것.
프랭클 박사는 아우슈비츠에는 자신의 하루치 빵 한 조각을 아픈 사람에게 주는 성자와, 수용자들을 모욕하며 발로 차며 희열을 느끼는 악마가 함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는 개인의 의지라고 말한다. 우리 부대에도 이런 상황이 적용되는 것 같다. 자신들도 선임들로부터 당했다고 부조리를 일삼는 선임이 있었던 반면, 무거운 물건을 나를 때 내 것까지 들어주시고 구더기가 바글바글한 쓰레기장에 직접 들어가 쓰레기를 꺼내신 선임도 있었다. 나는 나의 의지로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느낀 점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수용자가 아니라니!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른다. 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내 부대를 비교한다면 지금의 환경에 정말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수용소에서는 앞으로의 삶을 보장받을 수 없었지만, 나는 복무를 마치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언제나 죽음을 각오해야 했지만, 나는 그러한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지 않았다. 부대는 수용소보다 더 자유롭게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단지 먹고 자는 문제에 대한 고민이 아닌 부대 생활 속에서 운동, 공부, 다른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가능했다.
(수용소에서 자신이 할 일이 남아있는 사람, 예를 들어 가족의 가장이나 연구할 것이 있는 사람은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을 보아 사람이 살아가는데 의미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임을 알게 되면서 이것이 더욱 감사하게 다가왔다.)
나는 수용소에서의 간접 체험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군대로 돌아오면서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근무와, 일과를 끝내고 철조망이 둘러있는 벽들과 철문의 위병소를 보며 이곳을 나갈 날이 올까? 하는 생각과 그나마 아우슈비츠가 아니라서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그중 내게 핵심이 될 의미는, 고통이 그 자체로 의미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직관적이지 않은가?
"고통을 피하는 것이 좋겠지만 피할 수 없다면, 고통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라."
나는 이를 설명하는 구절이야말로 현실주의자인 조던 피터슨이 이 책을 추천한 이유로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 고통에 대해서 불평만 하고 있기보다 고통 속에 배워야 할 의미를 찾는 것이 현실을 살아낼 동력이 될 거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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